소설가 김혜나 "단절의 시대, 혼자가 아님을 말하고 싶었죠"

입력 2021-09-08 17:36   수정 2021-09-08 23:42


“소통 부재의 시대잖아요. 만나기도 어렵고, 진실한 내면의 감정이나 속에 있는 이야기를 하지 못하죠. 그런 것들을 묻어 두고만 있는 게 건강한 삶의 방식은 아닌 것 같습니다. 직접 만나서 소통할 수 없다면 글로써 소통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이 소설을 썼어요.”

소설가 김혜나(39·사진)는 3년 만에 들고나온 장편 《차문디 언덕에서 우리는》(은행나무)을 통해 ‘소통’을 삶의 구원 방식으로 내세운다. 책은 3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과 주인공 메이가 케이에게 쓴 편지를 번갈아 보여주며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독자는 소설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메이가 왜 편지를 쓸 수밖에 없었는지 이해하게 된다. 메이의 편지에 케이는 답하지 않는다. 일방적인 소통인 셈이다. 그래도 메이는 “나의 삶을, 나의 사랑을, 나의 절망을, 나는 이야기하고 싶어”라며 편지 쓰기를 멈추지 않는다.

지난 8일 은행나무 출판사에서 만난 김 작가는 “메이의 편지는 소설 쓰기와도 닮았다”고 했다. 작가 눈에 독자는 보이지 않는다. 바로 답장을 주지도 않고 피드백도 없다. 그런데도 작가는 글을 쓴다. 김 작가는 “어딘가에서 내 이야기를 읽어주는 사람이 있을 거란 믿음이 없다면 소설을 쓸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2010년 첫 장편 《제리》로 제34회 오늘의 작가상을 받으며 화려하게 문단에 등장했다. 이후 《정크》 《그랑주떼》로 이어지는 청춘 3부작을 통해 미래가 보이지 않는 청춘들의 방황을 사실적으로 그렸다. 2016년엔 네 번째 장편 《나의 골드스타 전화기》로 제4회 수림문학상을 받았다. 《차문디 언덕에서 우리는》은 2018년 낸 소설집 《청귤》에 실렸던 단편을 장편으로 재탄생시킨 작품이다. 국내에서 500장을 쓴 후 지난해 초 헝가리 레지던시에 3개월가량 머물며 후반부 500장을 완성했다.

전작과 달리 30대의 불안과 고뇌를 그렸다. 30대 중반의 요가 강사 메이는 어른이 되면 사는 게 쉬워질 줄 알았지만 마음의 고통은 더 커진다. 주변인은 물론 가족에게까지 환멸을 느끼며 인도로 도망치듯 요가 수련을 떠난다. 생생한 공간 묘사가 돋보인다. 2019년까지 10년 동안 부업으로 요가 강사로 일했던 작가가 여러 차례 인도를 방문한 경험 덕분이다. 그는 “차문디 언덕은 인도에 머무는 동안 마음이 답답하거나 글이 안 써질 때 가던 곳”이라고 설명했다. 죽음까지 생각했던 메이도 이 차문디 언덕에서 다시 삶을 긍정하게 된다.

소설 속 주요 인물은 메이, 한국에 있는 전 연인 요한, 인도에서 만난 여행작가 케이 등 3명이다. 케이는 김 작가가 좋아하는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 《성》에 나오는 인물 이름에서 따왔다. 그는 “육체적인 병으로 항상 한곳에 머무는 요한,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는 케이, 그 중간에 낀 메이가 삼각 구도를 형성한다”며 “차문디 언덕도 땅에 있지만 하늘을 향해 솟아 있는 중간에 낀 공간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주로 장편을 써왔던 김 작가는 요즘 단편에 빠져 있다. 다른 작가들과 함께 쓴 단편 모음집 《세상이 멈추면 나는 요가를 한다》(은행나무)가 오는 16일 출간된다. 내년에는 그의 단편집도 나올 예정이다. 그는 “한 가지 이야기를 깊이 할 수 있는 게 장편의 매력이라면 단편은 삶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김 작가는 “문학은 상처받고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며 “이들에게 위로가 될 수 있는 이야기를 계속 들려주고 싶다”고 말했다. “누구나 근원적인 외로움이 있고 공감받고 싶어 하잖아요. 사람들에게 이 세상에 혼자가 아니고, 모두 연결돼 있다는 것을 전해주고 싶어요.”

글=임근호·사진=김영우 기자 eig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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